'개발하는 위치'가 문제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예를 들어, 한달쯤? 전에 모 대규모 금융그룹의 IT 자회사에서 저희 데브기어로 델파이 대량 구매 문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량이니까 영업쪽은 물론 저도 당연히 관심을 가졌습니다만, 결국 드랍되었습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반 정도 개발하고 해외로(아마 미국이었던 걸로 기억) 가져가서 나머지 반을 개발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판매를 못했습니다.

거꾸로, 미국에서 사서 국내에 들여오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드물게 편법으로 미국 등지에서 구입해서 들여오는 분들이 있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는 패키지 판매가 있었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해서 구입한 후 국내 반입한 건데, 그것도 당시에 제재 조치가 있었고, 게다가 최근에는 엠바카데로 툴들의 경우 아예 패키지 판매가 없어졌습니다. 모두 ESD, 즉 전자 라이선스로 발급되기 때문에, 구매 단계에서 엔드유저 정보가 다 등록됩니다. 그래서 패키지를 사서 들여오는 편법도 불가능해졌죠.

여기까지는 영업적인 차원의 문제인데요. 그러니까 볼랜드/엠바카데로 본사에서 지사와 영업 채널들을 단속해서 해당 지역의 범위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고객인 개발자가 관계되는 법적인 문제는 아니죠. 하지만 이 문제는 개발자가 사용하는 라이선스 상으로도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오래되어서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는데, 볼랜드/엠바카데로의 라이선스 상으로도 '해당 지역의' 공인 판매처로부터 구입한 제품만 정상 라이선스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브기어를 통하지 않고 유통되는 모든 물량은 불법이 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단속 과정에서도 유통 경로를 증명하지 못하면 불법으로 취급됩니다. 유통 경로가 증명되지 않는 한 중고로 산 건지 해외에서 편법 구매를 한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증명이 안되는 물건은 불법이 되는 거죠.

(간혹 단속을 당한 경험에서 제품 박스와 라이선스 시트만 제시했더니 그냥 넘어가더라, 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그건 까놓고 말하자면 단속을 나간 수사관 개개인의 마음입니다. 적어도 SPC에서는 수사관들에게 유통경로를 확인하라고 단속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당부를 해도 말 안듣는 수사관도 있고, 괜히 오바하는 수사관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법기관의 관행을 개개의 케이스를 기초로 판단하면 아주 위험합니다. 어디 커뮤니티에 보면, 영장 안가져왔으면 일단 문 걸어잠그고 못들어오게 하면 그냥 지나가더라, 라고 성공담을 쓰신 분도 있었는데요. 그런데 실제로 괴씸하다고 제대로 껀수 잡힐 때까지 이잡듯이 뒤져서 회사를 완전히 풍비박산을 내는 경우도 봤습니다. 어디까지나 수사관들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거죠.)

델파이가 설치된 노트북 얘기는... 농담처럼 써보신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좋은 쪽만 바라보자면, 노트북을 가지고 기업 사업장에 들어가시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미국도 저작권법 체계가 우리나라와 대동소이해서, 기업 사업장에 들고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불법이 됩니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저작권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사내 내규상 개인 노트북을 아예 반입하지 못하게 하는 기업들도 많고요. 그중 하나가 저희 본사인 엠바카데로입니다. (지사 직원이 업무상 본사로 출장을 가도, 노트북을 들고 회사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물론 미국에도 준법 의식이 흐릿한 업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는 좀 더 타이트합니다.


ps.
'개인이 구매한 라이선스는 기업 사업장에서 사용할 수 없다'라고 말씀드렸는데, 다른 벤더들과 달리 데브기어에서는 개인 개발자들로부터 명시적인 요청을 받은 경우에 한해 개인 개발자가 사업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인정서 공문을 발급해드립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델파이/C++빌더의 확산을 위해 마련한 여러가지 크고 작은 정책들 중의 하나일 뿐, 당연히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구매한 소프트웨어를 기업 사업장에서 자유롭게 쓰게 방치하면 소프트웨어 불법 단속은 완전히 무력화되기 때문에 국내 저작권법상으로 개인 구매 소프트웨어는 기업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회피할 수 있도록 인정서 공문을 발급해드리는 것입니다.

ps2.
개개인의 개발자들로서는, 이런 공개적인 게시판에 민감한 얘기를 풀어놓으면 아무래도 따로 개별적으로 문의를 하시는 것보다 편하실 겁니다. 아무래도 더 성의있게 답변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도 있으실 거고, 또 수많은 개발자들이 같이 보니까 눈치가 보여서 좀 더 립서비스 같은 것을 더 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공개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원칙 그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법적 문제가 관련된 민감한 문제는,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록 더 까다롭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가 잘 아는 개발자분의 회사가 불법 복제로 단속을 당해 고소를 당했다면, 제게 살짝 따로 연락을 해서 부탁하신다면 당연히 저도 사람이니까 되도록 업체에 피해가 적게 가도록 문제를 조정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겁니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커뮤니티에, 우리 회사 망하게 생겼어요, 임프님 어떻게 좀 살려주세요, 라고 글을 쓰면 제가 어떤 조치를 할 수 있을까요? 회사의 입장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하게 때리는 시범 케이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면도 있습니다. 저는 기술 총괄이니까 기본적으로 영업 관련의 문제들은 제가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담당자들이 따로 있습니다만, 커뮤니티에 공개적으로 질문을 올리면 어쩔 수 없이 제가 관여하게 됩니다. 커뮤니티도 개발자들도 영업맨들이 나서서 관여할 곳이 아니기 때문에요. 그런데 기술 지원과 교육, 출판 같은 기술 서비스에도 시간이 한참 부족한 제가 영업쪽에서 신경써도 될 문제로 시간을 빼고 정력을 뺏기는 자체가 큰 마이너스입니다. 게다가, 법률 얘기가 자주 나오고 단속이 어떠니 하는 얘기가 자주 오가면 밝은 커뮤니티의 분위기에도 안좋습니다.



음 님이 쓰신 글 :
: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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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감사드립니다. 2010은 2009를 순간 헷갈려서 오타를 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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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는 더 놀라운 내용인데요. 그 국가제한이 "컴파일된 바이너리" 가 아니라 "개발하는 위치" 를 말하는 것인가요?
: 설마 한국에서 구입한 델파이로 컴파일된 파일을 한국에만 배포할 수 있다는 내용은 아닐테고 (설마 이건 아니죠?)
: 한국에서 구입한 델파이는 한국에서만 써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
: 만약 개인 라이센스로 델파이를 구입하면 그 델파이를 제가 해외에 나가서 (개인자격으로) 쓸 수 없다는 뜻인가요?
: ........좀 웃기긴 하지만 예를들어 델파이를 설치한 노트북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갈 수도 없다는 뜻인가요?
: (물론 가능하겠지만 테크니컬하게는 허용되지 않느냐는 의미입니다. 비꼬는것이 아닙니다 : ) 실제로 외국에 나가 작업할 일도 많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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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해외에서 구입을 선호하는건 가격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사람을 거치지 않은 즉시 구매" 를 선호하는 측면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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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업적으로 말씀하시는건 당연히 하실만하고 당연히 이해가 됩니다. : )
: 저는 외국 사이트엔 온라인스토어가 있는데 구매를 위해 꼭 "컨택"을 해야 한다는게 좀 의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