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파트에 김모씨가 살고 있었다. 김모씨는 어느 날 퇴근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바닥에 담배 꽁초가 있는 것을 보았고, 엘레베이터 안은 담배 냄새로 찌들어 매우 역겨움을 느꼈다.
'대체 어떤 몰상식한 인간이 엘레베이터 안에서 담배를 피웠을까!'
김모씨는 이름 모를 몰상식한 자의 소행에 매우 분개하면서 엘레베이터를 내렸다.
그런데, 김모씨는 다음날에도 역시 엘레베이터 바닥에 담배 꽁초를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서, 이 몰상식한 자의 거듭된 담배꽁초 버림 만행에 매우 분개했다.
'이 몰상식한 인간이 누군지 열라 궁금하군!'
그러던 어느 날, 김씨는 평소에 약간의 친분이 있던 박모씨가 담배를 꼬나물고 엘레베이터를 타는 것을 보았고, 박모씨가 엘레베이터 안에서 꽁초를 바닥에 비벼끄는 몰지각한 행동을 목격했다. 김씨는 박모씨의 몰지각한 행동에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박모씨를 간접적으로 꾸짖고자 그 다음날 엘레베이터 안에 다음과 같은 벽보를 붙여 놓았다.
"아파트 주민 여러분! 엘레베이터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꽁초를 버리는 몰지각한 행동을 하지맙시다. 이는 너무 몰지각한 행동입니다"
다음날 박모씨는 이글을 보고 무지 열받았다. 자신이 담배 꽁초 버리는 것을 김씨가 보았으므로, 분명히 이 벽보는 김씨의 소행이라고 확신한 박모씨는, 김모씨의 벽보 옆에다 다음과 같은 벽보를 붙여 놓았다.
"김모씨 이 4가지 없는 인간아! 내가 담배꽁초를 버리던 말던 니가 뭔 상관이야! 너 그렇게 잘난 인간이야? 너는 평소에 담배꽁초 절대 안버리는 인간이야? 건방진 녀석. 니나 잘해! 너 나를 명예훼손한거야 알어?"
이 아파트에 사는 다른 사람이 이 두 벽보를 보고, 자신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어서 붙여 놓았다.
"처음 글이 박모씨의 명예를 훼손한거 같네요. 담배 꽁초를 버린 박모씨가 보기에는 매우 기분 나빠할 글이 맞습니다"
이 글들을 본 김모씨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엘레베이터 안에 붙여 놓았다.
"내가 대체 무슨 명예훼손을 했단 말입니까? 담배 꽁초 함부로 버리는 몰상식한 인간한테도 명예란 것이 있나요? 그리고 나는 애초에 박모씨가 담배꽁초 버렸다고 명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박모씨 스스로 담배꽁초 버렸다고 실토한 꼴입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명예훼손입니까? '자나깨나 불조심'이란 표어를 보고, 방화범이 자기를 모욕한 글이라고 생각하는 꼴 아닙니까?"
이 아파트에 사는 또 다른 사람이 이 글들을 읽고, 다음과 같은 벽보를 엘레베이터 벽에 붙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김씨는 박씨를 명예훼손한 것 같지 않습니다"
다음날 또 다른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벽보를 그 아래 붙여 놓았다.
"김씨가 원래글에서 명시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박모씨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김씨의 원래 글은 명예훼손이 맞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벽보를 붙였다.
"담배꽁초 버리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합니까? 희안하네."
이후 이 엘레베이터 벽은 원래 글이 명예훼손이다 아니다를 주장하는 글들로 가득채워져 버렸다. 이를 본 아파트 관리소장은 모든 벽보를 떼어서 불질러 버리고, 다음과 같은 벽보를 붙여 놓았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끼리, 서로 명예훼손으로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모든 벽보를 제거했습니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지금까지 어른들의 허접했던 벽보 전쟁을 쭈욱 봐왔던 한 꼬마가, 관리소장이 붙여 놓은 이 벽보를 보고 자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엘레베이터 안에서 담배 꽁초 버리는거 그거 나쁜거야 좋은거야? 나쁜 행위로 알았었는데 이제 그게 정말 나쁜건지 헤깔려. 나는 담배꽁초 싫은데!"
그렇다. 이 꼬마가 지적했듯이, 이 아파트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정작 누가 옳고 그른지는 따질 생각을 못하고, 전혀 쓸데없는 명예훼손 여부를 가지고 서로 이견들만 대립했던 것이다.
논쟁을 하거나 게시판에서 글을 쓰다가,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경우를, 나는 요새 매우 많이 경험한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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