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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랑방입니다.
[14656] Katie
노정윤 [lorentz] 3003 읽음    2008-06-15 13:56
Katie 는 2008년 6월 4일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2008년 6월 13일.

이날은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학생들이 출석하지 않았다. 내가 항상 바라던 그런 날이었다.
유일한 학생의 자격으로 Katie 가 준비해오는 재미없고 심지어는 잠까지 오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권한이 주어졌다.

나는 책을 한권 꺼내서 Katie 에게 내가 읽고 있던 소설의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It would be senseless for the author to try to convince the reader that his
characters once actually lived. They were not born of a mother's womb;
they were born of a stimulating phrase or two or from a basic situation.
Thomas was born of the saying 'Einmal ist keinmal'. Tereza was born of
the rumbling of a stomach."

Katie 는 눈이 둥그레지면서 감탄을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가 느끼기
힘든 감탄의 표정이다. 나는 그저 음.. 그랬군, 저랬군 할 뿐이지 벅찬 감동으로
책을 내려놓고 생각의 바다를 헤매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다.

나는 문득 Naomi 라는 일본인 여자를 회상한다.

11년 전, Naomi와 내가 지금의 Katie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 우리는 일본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별 할 얘기가 없었던 우리는.. 지금 내가 Katie 에게 읽어
준 그 책을 주제로 얘기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는 영국의
nxt 라는 회사로부터 평면스피커 관련 기술을 도입하려던 중이었는데, Naomi 는
동경에 있는 nxt asia에 근무 중이었고, 나를 포함한 우리회사 연구소 직원들이
영국으로 기술도입연수를 떠날 때 그녀는 우리와 함께 교육에 참여했다.

우리가 영국에 도착하던 날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다이에나 공주의
시신이 파리에서 런던으로 도착하던 날이었다. 우리는 런던에 도착하자
마자 헌팅던이라는 작은 도시로 이동했는데, 영국 전역이 하얀 꽃에
뒤덮여 우울한 분위기였다. 만나게 되는 영국인들 마다 다이아나 공주에 대한
위로의 얘기를 건네면, 그들은 마치 자기 식구 중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처럼 고마와하고 같이 아쉬워 했고, 초면이라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Naomi와 나는 아침마다 호텔 주변을 같이 산책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하루는 교회 옆의 작은 묘지에서 19세기에 살았던
Naomi 라는 소녀의 묘비를 발견하였다. 18세의 나이로 죽어서 묻힌
Naomi 의 묘비 앞에선 Naomi.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없이
묘비를 바라다보던 그녀는.. 그책. 밀란쿤데라가 쓴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영역본을 자신도 사고 싶다고 얘기했다.
아름다운 그녀의 두눈이 나를 바라보며 무엇인가 얘기하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교육이 끝나고 런던으로 옮겼던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 Naomi와 나는
서점을 찾아 헤맸지만, 다이아나 공주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모든 상점이
영업을 하지 않던 그 시기의 영국에선 책을 살 수가 없었다. Naomi 와의
만남은 항상 그것이 마지막 만남일 지도 모를 그런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다음번 만남에서는 그 책을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Naomi 와는 그 후 두번을 더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약속대로 책을 빌려주었고,
그 다음 만남에서 그녀는 아직 다 못 읽었다며 다음에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허황된 꿈을 찾아 세월을 낭비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문득 그녀의 생각이 나서 연락을 취했더니, 그녀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떠났다고 했다. 2004년에 영국을 다시 찾았을 때, 나는 그녀를 기억하며
다시 그책을 샀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날아온 Katie 에게 그 책을 다시 읽어주게
된 것이다.

얘기가 끝날 무렵.. Katie 가 Naomi 를 다시 찾아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아직 Naomi 가 캐나다에 있다면 canada411.ca 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두사람이 언젠가 꼭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Naomi와 내 이야기가 전달된 것에 대해 기쁘긴 했지만, 내가 그토록 절실하게
Naomi와의 재회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아름다왔던 그녀의
모습을 그 시절의 모습으로 간직하는 것 역시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Katie... 그러고 보니 KT 와 발음이 유사하다.. 그녀는 선릉역 근처 역삼동에
산다. 삼성역에서 수업을 마친 그녀와 함께 선릉역까지 걸었다.

다음달.. 늦으면 그다음달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암스테르담에 설치될 예정이고,
나는 그 프로그램과 그것이 설치될 환경에 대해 암스테르담 혹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현지인들에게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한다.

내 꿈은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자극적인 한두구절의 문장으로부터 우연히 만들어지듯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 우연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루어져가는 것 같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누군가가  있어 나를 도와주었고, 나의 능력은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과대포장되면서 팔려나간 듯 하다.

Katie는 내가 하게될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을 돕고 그 리허설을 해볼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주는 댓가로 테헤란로에 즐비한 찻집들 중 한 곳에서 마시는
밀크가 잔뜩 든 커피 한잔 만을 요구했다.

언젠가 퇴근 후 유럽의 어느 한가로운 찻집에 앉아 소설을 읽으면서 멍하니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꿔보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꿈꿔봐야겠다...
YULL [huiso]   2008-06-15 21:07 X
노정윤님.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가슴벅찬(?) 글이었습니다. ^^

저도 선릉역 근처 역삼동에 삽니다.

셋이서 걸어볼 그날을 기대해 봅;;;;
노정윤 [lorentz]   2008-06-15 23:12 X
선릉역을 중심으로 YULL 님은 남남서쪽이지만 Katie 는 서쪽에 삽니다.

저는 남남동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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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6 Katie 노정윤 3003 20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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