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서 말이죠.
비주얼 C++의 국내 최고 전문가라는 사람(A씨라고 합시다)이 저한테 찾아와서 C++빌더에 대해 꽤나 아는 척 하면서 유식을 떨면, 저는 웃기지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C++빌더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줄 몇마디 해주겠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경험이 몇번 있었는데... 자바 전문가들 중에는 C++에 대해 꽤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 A씨가 저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는 찍소리 못하다가, 따로 언론사 같은데다가 C++빌더에 대해 유식을 떨면서 C++빌더 참 별로다, 그딴거 쓰지 마라, 그딴 소리를 주절대면 참 짜증나겠죠. 게다가 그 A씨가 직장 상사라면, 인지상정상 공개적으로 A씨를 지명해서 면박을 줄 수도 없고 짜증만 더 치밀어오르겠죠. 그래서 저도 기자들 불러서 '사실 C++빌더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내겠지만, 찍어서 A씨를 비난하기는 어렵겠죠.
그런데 진짜 문제는, SW 개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A씨와 저의 각각의 기사들만 대충 봐서는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개발자들 안에도 각각의 전문 영역이 있고 각각의 영역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보다는 훨 잘 모를 수 있다는 걸 알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 흔히, 사람들은 그 사람의 약력을 참고합니다. 그런데 그 A씨는 저보다 더 삐까뻔쩍한 경력이 많단 말이죠? 햐... 이렇게 되면 정말로 꼬입니다.
딱 이런 상황이, 지난 미국산 쇠고기 협상 체결 이후 우리나라 광우병 전문가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져왔습니다.
제가 비유한 진짜 전문가는 우희종 교수, 짜가 전문가는 이영순 교수입니다.
우희종 교수는 지난 10년간 광우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한마디로 국내 최고의 광우병 전문가입니다. 반면, 이영순 교수는 수의대 교수라는 사람이 인수공통질병이라느니 무슨 이상한 질병의 신약이니 하면서 주로 돈되는 '인간' 질병 연구에만 전력을 다한 사람입니다. 독성물질 비소로 항암제 만드느라 꽤 바쁘시더군요. 광우병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해본 바가 없구요.
그런데 이 두사람은 모두 같은 서울대 수의대 교수입니다. 나이로나 지위로나 이영순 교수가 한참 고참이구요. 게다가 이영순 교수는 식약청장 경력 등 프로필도 삐까번쩍합니다. 근데 짬밥과 계급으로 전문 지식이 땜빵이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영순 교수가 얼마나 외견상 휘황찬란하든, 광우병 전문가는 이영순 교수가 아니라 우희종 교수입니다.
또 광우병 전문가를 꼽으라면 서울대 의대의 김상윤 교수가 있겠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CJD 환자를 진료한 경력이 있고, 확진은 안되었지만 국내 유일한 vCJD 의심 환자를 진료한 바도 있습니다.
또 한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한림대 김용선 교수쯤 될 겁니다. 그, 2004년에 한국인이 MM 유전자형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냈던 그 사람입니다. 한림대는 보건복지부로부터 CJD 진단부검센터로 지정된 일송생명과학연구소가 있고, 이 센터장이 바로 김용선 교수입니다. 이 김용선 교수는 자기 논문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해외 잠적까지 하다가 돌아와서는 'vCJD가 아닌 sCJD에 대한 논문이었다'는 변명을 했는데, 사실 이 논문의 결론은 sCJD, vCJD가 문제가 아니라 메티오닌-메티오닌(MM) 유전자형이 한국인에 95%로 많다, 입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MM 유전자형이 특히 vCJD, 즉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것은 이 분야 과학자들의 일반론이었습니다. 따라서 김용선 교수의 연구 결과가 한국인의 광우병 발병 가능성과 연관되어 해석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김용선 교수 본인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언급할 때 그런 뉘앙스를 풍기고 다녔습니다.
(최근에 와서 MM론이 흔들리는 이유는, MM 유전형이 단지 상대적으로 잠복기가 짧아서 먼저 대량으로 발병했을 뿐, 더 긴 잠복기 후 MV/VV 유전형도 발병할 것이라는 이론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론이 처음 대두된 것은 인간광우병 연구에서 필수적으로 참고되는 쿠루병에서 그와 같은 잠복기가 유전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연구 결과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최근에 들어 이전에는 단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MV, MM형 인간광우병 환자가 실제로 발견됨으로써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근데 어쨌든 이 양반은 자신의 논문이 논란의 초점들 중 하나가 되자 해외로 튀었다가 돌아와서는, vCJD 연구가 아니었다, 라고 스스로의 말을 뒤집는 놀라운 처세술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2004년의 그 연구 자체가 정부 용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참여자들 중에도 질병관리본부 공무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정부의 입김을 피하기가 힘든 면도 있었을 겁니다. 또 본인이 센터장인 연구소도 정부 지정으로 인해 상당한 예산 지원을 받고 있을 테고요.
어쨌든 이 양반은 그 이후로는, 국내에 있으면서도 이번 미국산 쇠고기 및 광우병 논란에 대해 가타부타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중립을 지켜서 본전은 가져가겠다는 계산인 듯 한데... 해외 도피까지 하고 돌아온 이 양반의 행태를 볼 때 그 입으로 바른 말을 하기는 애초에 글렀지 싶습니다. 책임있는 지식인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이 양반은 일반인이 의견을 참고할 수 있는 전문가에서 제외. (의견 자체를 전혀 내놓지 않고 있으니...)
그런데 정부는 이런 전문가들을 제외하고(특히 우희종 교수의 경우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작년까지 농림부 쇠고기 수입 관련 위원회의 자문위원이었는데도 현정부의 협상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습니다) 엄한 짜가 전문가들을 동원했으니, 그게 이영순 교수와 의사협회의 양기화 연구위원 등입니다. 양기화 연구위원은 알츠하이머 전문가랩니다. 아니, 알츠하이머는 CJD류의 질병들과는 완전히 다른 질병 아니던가요.
정부에서 업계에서 알아주는 진짜 전문가 두명을 배제하고 짜가 전문가 두명의 의견만 내세우고 있으니, 정부가 내세우는 '과학적 근거' 자체도 그만큼 비전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볼 때는 어떤가요. 정부에서 한번 과장한 것을 언론사에서 다시 한번 그럴 듯하게 포장도 해줍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겐 이 두사람이 국내 최고의 광우병 전문가로 둔갑했습니다.
이런 웃기기 짝이 없는 문제를 저와 똑같이 느낀 분이 있었으니, MBC의 임명현 기자입니다.
지난 5월 10일에 과학기술한림원에서 열렸던 광우병 토론회에 참석해서 취재한 느낌을 컬럼으로 썼더군요.
http://www.nakorean.com/news/articleView.html?idxno=7244
역시, 전문가들이 코앞에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직접 관전한 기자의 시각은 예리합니다. 아래의 한 마디가 그 토론회의 전체 분위기를 짧지만 제대로 설명하는군요. (시간나면 위 컬럼 전체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읽을만 합니다.)
"여러 패널들이 많은 말을 했지만 수의학 쪽에서는 우희종, 의학 쪽에서는 김상윤 교수가 점잖고 짧게 한 마디씩 하면 나머지는 바로 묵묵부답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같은 개발자라고, 비주얼 C++ 전문가이면 C++빌더에도 전문가입니까? 마찬가지로 의사나 수의사라고 다 광우병 전문가는 아닙니다. 인기 드라마 뉴하트에도 나왔죠. 외과 의사라고 다 심장 째고 들어내고 할 수 있습니까? 흉부외과 전문가가 따로 있고, 그 흉부외과 안에도 최고의 실력자 최강국이 있고 손 벌벌 떠는 민영규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세부적인 전문 분야의 진짜 전문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관여된 문제에서 각자 스스로 전문 지식을 다 공부해서 따라잡은 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면, 정부가 내세우는 어용 짜가 전문가가 아니라 진짜 전문가를 찾아서 그분들의 의견을 신뢰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얘깁니다. ^^
p.s.
볼랜드포럼에 수많은 C++빌더 전문가들이 쟁쟁한데,
비록 이해를 돕고자 예를 든 겁니다만 저를 C++빌더 전문가로 언급해서 송구스럽습니다. -.-;;
광우병의 원조이자 광우병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영국에서 광우병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도 광우병 연구를 하고 있는 김기흥박사의 글입니다.
공포의 현실화, 인간 광우병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7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