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에 24평짜리 집이 있습니다. 2003년에, 평생 구리에 눌러 살 작정으로 빚까지 얻어서 아파트를 샀습니다.
구리에서 살기 시작한 얼마후에 첫째가 태어났고, 맞벌이를 하는 사정상 키워줄 사람이 없어 성남의 처갓집에서 장모님이 구리-성남을 오가면서 애를 봐주다 도저히 안되어서(구리-성남 사이는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데 교통편은 꽝입니다), 결국 어렵게 장만한 집 1년 반도 못살고 전세를 내주고 처갓집 근처로 전세를 들어왔습니다.
2년만 있다 다시 돌아가야지, 그러던게, 두번, 세번 반복되고, 지금은 5년째 성남에서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 4년이 채워지던 작년 가을에는 구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만 둘째가 짜잔~하고 나오는 바람에 또 좌절... 지금은 6년이 채워지는 내년 가을에 돌아가려는 희망으로 살고 있습니다.
성남에서 뿌리 박고 잘 사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구리 집이 많이 그립습니다. 집 있는 곳이 신시가지라 근처 정비도 잘 되어 있고, 전망 좋고 공기 맑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2차선 도로 하나 건너 잘 정비된 하천 공원이 있습니다. 10km쯤 뻗어있는 이 왕숙천 공원에는 각종 체육시설과 잘 정비된 산책로도 되어 있고요. 신시가지다보니 잘 정비되어 어딜 가나 차들로 넘치는 성남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얼마전에 보니, 구리 집이 집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제가 2003년에 살 때 가격이 1억7천이었는데, 지금은 2억8천~3억 간답니다. 우와~ 돈벌었네~ 하실 분들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순진한 겁니다. 사는 집 한채 가진 서민에게는, 집값이란 오르면 손해고, 더 오를 수록 손해 폭이 점점 더 커집니다. 왜 그럴까요?
내년 가을에 구리로 돌아가려면, 부산에 계신 부모님도 모시고 와야 합니다. 환갑도 오래전에 지나고 얼마 있으면 칠순이시고, 또 죄송하게도 처가집에서 멀어지면 둘째를 봐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제가 장남이고 하니까 가까이서 모셔야 하고요. 부산에 친지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제 여동생 둘다 오래전에 다 객지로 나와버려서(하나는 여수 하나는 영등포, 남편따라 여수 가있는 막내는 서울 진입을 꿈꾸고 있습니다) 부산에 자식이라고는 하나도 남지도 않았습니다.
요즘 강북권 집값이 하도 오른다고 해서, 오르는 집값 감당이 안될 듯 싶어 부모님 사실 집을 미리 사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몇주 전부터 구리 저희 집 근방에서 부모님이 사실만한 집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1억 왔다갔다 하던 작고 오래된 아파트가 1억5천을 넘어서고, 1억 5천선을 하던 놈들은 2억 넘어간지 오래됐습니다. 불과 1~2년 사이에 말입니다. 빌라같은 일반 주택은 아예 매물도 없고 가격은 턱없이 올랐습니다. 구리도 그 근방 전부가 뉴타운 지정이 되어서 아파트보다 일반 주택들이 오히려 가격이 더 폭등해버린 겁니다.
아, 저희 집에서 같이 모실 수 있으면 좋긴 하겠죠. 그런데 애가 둘이니 애들한테 방 하나는 내줘야 하고 또 방 하나는 제가 작업실로 씁니다. 방 세개인 24, 33평 정도의 구조에서는 부모님이 등 눕힐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방이 넉넉한 중대형으로 옮기려면 고급형 주택이라고 작은 집 두개보다 가격이 훨 더 뜁니다.
부산에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팔고 약간만 보태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산의 20평 작은 아파트는 지금 시가가 3천도 안된답니다. 그것도 내놔도 팔리지가 않는다는군요. 저희 부부가 꽤 무리를 하고 다 갚았던 빚을 다시 얻어서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은 1억 정도인데, 부모님이 돈 가지신게 있으면 좋겠지만, 평생 사업하다 망하기만 한 아버지 덕분에, 그나마 어머님이 아버지 몰래 쥐고 있는 돈이 2천이랩니다.
그럼 다 합쳐봤자 1억 4,5천인데, 구리에서 저희집이랑 내왕이 가능한 곳으로 이 액수로 집을 얻으려면 복도식 16평 쪽방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정도에서 전세로 신혼을 시작하고 하는 분들도 많은 줄 알지만(저도 집사람과 비슷한 집에서 정말 완전 무일푼으로 시작했었죠) 가실날이 점점 눈앞에 보여가는 두분을 이런 좁아터진 구석방에 처박고 싶지는 않아서 요즘 고민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손님이 오시면 재울 방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복도식 16평 구조에서는 방이 달랑 두개인데다 거실 면적이 거의 안나오기 때문에 세간살이는 작은 방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손님 재울 곳이 없습니다.
물론 저는 장남으로 부모님을 가까이서 모셔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라 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셔야 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가진 24평 아파트도 부러울 분들도 적지 않겠지만, 평생 지금 가지고 있는 24평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도 부모님 아니라도 33평, 40평형대에 살고 싶습니다. 돈을 벌어놓으면 그걸로 조금씩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옮기고 싶은 것은 사람의 당연한 욕구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작은 평형의 아파트가 1억 뛰는 동안에 그보다 조금 더 큰 아파트는 1억5천, 2억씩 오른다는 겁니다. 오르지 않았으면 1억 정도만 더 만들면 옮길 수 있을 것을, 집값이 뛰는 바람에 2억5천, 3억을 마련해야 합니다. 게다가 집값이 오른다고 해도, 그건 흔히 말하는 '엉덩이에 깔고 앉은 돈'입니다. 엉덩이에 깔고 앉은 돈은 내돈이 아니라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살고 있는 집이 1억 오른다고 해도 가용 자산이 아닙니다.
내 집만 오르는 게 아니라 다른 집들도 오르고, 더 큰 평수는 더 많이 오르기 때문에 어차피 평생 집에 물려있게 되는 돈입니다. 오른 집값이 현금화되어 손에 쥘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을 팔고 전세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집안에 큰 우환이 있어 급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기집 팔고 전세 옮기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결국 평생 엉덩이 밑에 깔고 사는 돈인 겁니다.
그런데도 상당수 서울 시민들은 지난 총선에서의 뉴타운 공약이 헛바람됐다고 난리랩니다. 어떻게든 집값 더 올려놓으랩니다. 여기 포럼 회원분들 중에서도 그런 지역에서 집값 오르기를 바라면 살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죄송하게도 제가 보기엔 미련한 국민들의 전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겨우 좀 잠잠해진 수도권 부동산 바람을 다시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강북권 뉴타운에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분들입니다.
집값이 올라서 실제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최소 두 채, 서너 채 이상 가지고 실질적인 자산으로 굴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산가들은 스스로 얼굴을 숨기고 있어서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의외로 우리 바로 근처에도 흔히 있습니다. 대기업 비슷한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은 주변의 부장급, 이사급 분들이 재산을 어떻게 굴리는지 잘 보세요. 제 경험상으로는 그런 분들 열명 중 5, 6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닌 별도의 부동산으로 재산을 굴리고 있습니다.
그런 분이 주변에 없는 소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로서 그런 부동산 자산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얼굴이 궁금하시다면, TV 뉴스를 보시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로 헤드라인 뉴스에 나오는 이 정부의 고위직 분들, 즉 장관들 및 비서관들이 그런 분들임은 이미 잘 알려져있습니다. 겨우 20, 30평대 집 한채 가지고 있는 서민이 뉴타운이니 뭐니 해서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숫자만 올라갈 뿐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없이 그런 부동산 자산가들의 지갑만 불려주는 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집의 가격이 폭락해도 좋으니 집값이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따지자면 아직 집을 사지 않은 사람들이 저보다 이익을 보게 되는 꼴이니까 좀 속이 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걸 따지기보다 집값이 떨어지면 더 대승적으로 (일부 부유한 자산가들을 제외한) 대다수 서민들의 윈윈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전체를 봤을 때는 그렇게 폭락한다면 당연히 공황 상태로 갈 것이고 그래서 '연착륙'을 해야 하겠습니다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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