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간만에 영화... 뒤늦게 어거스트 러쉬를 봤습니다.
집사람이랑은 영화 취향이 완전히 달라서, 둘이서 그렇게 재밌게 영화를 본 건 꽤 오랜만이었던 거 같습니다.
히트한 영화이면서도 여기저기에 심드렁한 평들이 꽤 있었던 걸 봤는데요.
주로 영화 매니아이거나 음악 매니아인 분들이었던 듯.
완성도 높은 영화를 기대하는 영화 매니아들에게는 우연의 연속이고 뭔가 덜 짜인 스토리가 불만이었겠고..
음악 매니아들에게는, 음악영화 주제에 등장하는 곡들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고, 게다가 주인공 어거스트가 천부적인 음악 천재라는 설정에도 어거스트가 작곡한 것으로 설정된 어거스트 랩소디가 고만고만한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평들이 많더군요.
뭐.. 그분들은 한 가지를 놓친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보기엔 이 영화는 음악에 대한 영화도 아니고 재능에 대한 영화도 아니고, 열정과 꿈에 대한 영화였던 거 같습니다.
단지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줄 뿐이라면, 오히려 경외감과 시기만 느껴졌겠죠.
제가 가장 가슴이 떨렸던 장면은 어거스트가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마침내 부모를 만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어거스트가 처음으로 기타를 들고 맘대로 두들겨대며 연주하는 그 장면이었습니다.
다들 잠든 밤에 기타를 바닥에 놓고 몇번 두들겨보다가 이내 신나게 두들겨대는 모습,
그리고 얼굴 가득 퍼져나가는 활짝 핀 희열에 가득 찬 웃음, 그 순간엔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그 느낌,
그래, 희열이라는 게 저런 거였지, 하는 걸 떠올리게 되고 내가 예전에 가졌던, 그리고 지금은 한쪽 구석에 밀려났던 오래 전의 희열의 기억을 찾아내어 다시 따뜻하게 끌어안게 되는...
프로그래밍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할 때 그런 느낌이었죠.
그리고 살다가 꽤 힘들어질 때마다 그 느낌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런 느낌의 기억을 저처럼 히든 카드로 가지고 있는 거겠죠.
저도 영화 속의 어거스트처럼 그렇게 웃는 얼굴로 계속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억만 잘 간직하고 있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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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 보세요. (음... DVD 말고는 없겠네요. ^^;)